SUMSEOUL

EN KR

Search

NEWS

폐지로 만든 소재, 국립박물관 기념품으로…썸코리아의 성장 과정 - 한국경제 (26.04.08)

87670d04176c6b8ebaf36f4359e2dc0e_1775783449_022.png

 

입력     2026.04.08   10:48


 

| 썸코리아 백지희 대표, 업사이클링 소재 ‘페이퍼마블’로 브랜딩 에이전시의 경계를 다시 그리다 글로벌 브랜드부터 국립박물관까지…소재를 직접 만드는 에이전시의 다음 행선지는 웰니스 AI 홈케어


폐지, 미네랄 레진, 곡물 전분. 이 세 가지 재료로 만든 소재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숍 진열대에 놓이고, 세종문화회관 굿즈샵을 채우고, 신세계백화점 팝업스토어를 순회했다. SK-II의 판매하지 못한 쇼핑백은 디퓨저로 재탄생해 싱가포르,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수출됐다. 

통합 브랜딩 솔루션 에이전시 썸코리아가 자체 개발한 업사이클링 소재 ‘페이퍼마블’이 걸어온 길이다. 소재를 직접 개발한 브랜딩 에이전시라는 낯선 정의는 이제 글로벌 협업 실적과 공공기관 입점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브랜드의 친환경 고민을 실제로 해결할 소재가 없었다 

페이퍼마블 개발의 출발점은 썸코리아가 직접 기획하고 설치·운영했던 브랜드 팝업스토어 현장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나면 고스란히 버려지는 자재들을 보며 느낀 불편함, 그리고 클라이언트들이 지속적으로 요청해온 친환경 소재에 대한 니즈가 맞닿은 지점에서 나온 해답이었다. 

브랜드 굿즈 시장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지속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브랜드들이 막상 굿즈를 제작할 때는 그 철학을 담아낼 소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지희 썸코리아 대표는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브랜드 굿즈에도 환경친화적 소재와 디자인이 중요해졌지만, 실제로 그 고민을 해결해줄 소재가 시장에 없었다”며 “저희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페이퍼마블은 버려진 종이에 미네랄 레진과 곡물 전분을 결합해 만든 소재다. 종이처럼 가볍지만 단단한 내구성을 갖췄고, 표면은 세라믹처럼 매끈하다. 사용하는 파지에 따라 제품마다 고유한 마블링과 색감이 구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상표권 등록을 완료했고 특허 출원 중이다. 

ESG 경영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썸코리아는 국제 ESG 평가기관 에코바디스로부터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글로벌 동종 분야 상위 1%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백 대표는 “인증을 위한 서류 준비는 6개월이 걸렸지만, 실천은 일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기별 전력 사용량 분석, 사내 폐기물 감축 목표 설정, 전기 소등의 날 운영, 바다의 날 플로깅 참여, 직원 역량 향상을 위한 교육 등이 인증 과정에서 제출한 일상의 증거들이었다. 에코바디스 평가 항목 중 환경 부문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페이퍼마블 소재 개발과 활용 실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해달라”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어달라”…브랜딩 파트너로 자리잡기까지 

글로벌 브랜드들이 페이퍼마블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썸코리아가 브랜딩 에이전시로서 쌓아온 신뢰가 먼저였다. 록시땅, 삼성, CGV, 캄파리 등 국내외 브랜드들과 협업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회사는 단순 실행 대행사가 아닌 브랜드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로 자리를 잡았다. 

백 대표는 “클라이언트들이 ‘디자인을 이렇게 해달라’가 아니라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들고 온다”며 “그 신뢰가 쌓인 자리에서 페이퍼마블이라는 소재 솔루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록시땅은 2024년 한남동에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 ‘에스파스 한남’의 2층 도어를 페이퍼마블로 제작했다.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철학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한 작업이었다. 

현대백화점 내 프랑스 캐시미어 브랜드 봉파르 파리의 진열대도 페이퍼마블로 만들어졌다. NHN과는 CI 리뉴얼로 폐기될 예정이던 명함을 다용도 꽂이로 업사이클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랜드가 안고 있던 폐기물 문제를 소재 개발로 풀어낸 사례였다. 

소재의 완성도는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썸코리아는 2025년 iF 디자인 어워드 에코 머티리얼(친환경 소재) 부문을 수상했다. 삼성전자 제품의 골판지 박스로 제작한 솔라셀 리모컨 크래들은 세계 곳곳의 삼성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이미지를 실물로 전달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세종문화회관·서울시까지, 페이퍼마블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는 곳들이 생겼다 

글로벌 브랜드 협업으로 소재의 가능성을 확인한 페이퍼마블은 이제 국내 공공 문화기관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썸코리아가 운영하는 브랜드 ‘페이퍼어스(PAPERUS)’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뮷즈 공모에 선정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선정 제품은 ‘업사이클링 마패 오너먼트 마그넷’. 조선시대 관원의 신분증이었던 마패를 모티브로, 마그넷과 오너먼트 두 가지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전통 문화 콘텐츠와 현대적 디자인, 친환경 소재가 한 제품 안에서 교차하는 지점을 공모 심사 측이 먼저 알아본 셈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샵과 뮷즈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이다. 

세종문화회관과는 ‘세종에 담다’ 시리즈를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의 계단과 화단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한 굿즈 라인업으로, 공간의 기억을 일상 오브제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서울시의 서울마이소울 굿즈 프로젝트에도 선정돼 해치 북엔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87670d04176c6b8ebaf36f4359e2dc0e_1775783915_5215.jpg



자체 팝업스토어는 소재의 대중적 가능성을 직접 시험하는 자리가 됐다. 페이퍼어스의 대표 제품 ‘폴럭(POLLUCK)’을 앞세운 ‘행운수산’ 팝업이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을 시작으로 본점, 강남점까지 3개점을 순회했다.

폴럭은 전통적인 액막이 명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리빙 오브제다. 페이퍼마블 특유의 마블링이 제품마다 다른 패턴을 만들어내는 특성이 MZ세대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끌었고, SNS를 통한 자발적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백 대표는 “업사이클링이 틈새 트렌드를 넘어 대중 소비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집 안에 두고 싶은 돌봄 기술”을 만들 수 있을까 

소재 개발과 공간 디자인 역량을 축적해온 썸코리아가 다음 행선지로 선택한 것은 웰니스 AI 홈케어다. 최근 레이더 센서 기반 AI 솔루션 기업 다민테크놀러지, 고정밀 박막형 센서 전문 기업 제이테크와 웰니스 AI 홈케어 솔루션 구축을 위한 3자 MOU를 체결했다. 

방향은 ‘보이지 않는 기술(Invisible Tech)’이다. 센서와 AI 분석 기능을 페이퍼마블 소재의 인테리어 오브제와 벽면 패널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웰니스 AI 홈케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백 대표는 “돌봄 기술 관련 제품들이 기능은 뛰어나도 일반 소비자가 집 안에 두고 싶다고 느끼는 제품이 되지 못했다”며 “첨단 센서 기술과 AI 분석, 그리고 만족스러운 디자인이 하나의 솔루션 안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홈케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35%를 넘어선 지금, 혼자 사는 시니어 인구가 자신의 집에서 안전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사회적 맥락이다. 2027년 1분기 내 1차 결과물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버려진 종이 한 장에서 출발한 소재 실험은 글로벌 브랜드 협업과 공공 문화기관 입점을 거쳐, 이제 사람이 사는 공간의 안전을 설계하는 데까지 닿으려 하고 있다. 백지희 대표는 말한다. "단순히 예쁜 굿즈를 만드는 게 아니라 버려지는 것에 가치를 붙이는 일, 그게 저희가 해온 일의 본질입니다. 브랜드의 고민을 소재로 풀어내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공간과 기술을 통해 사람의 삶을 더 안전하고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까지 왔습니다. 그 가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